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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도서

본 기사 번역 제공은 <한양대학교 HK 러시아 유라시아 연구사업단>이 러시아 및 유라시아 지역의 주요 헤드라인 뉴스들을 정리, 번역하여 매주 국가별로 원문과 함께 제공하는 ‘주간뉴스 번역서비스’이다. 2010년 7월 20일 제 1호가 나온 이후 지금에 이르며, 본 기사번역 제공서비스가 포괄하는 국가에는 러시아연방을 비롯하여,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 등 12개 국가이다. 이들 12개국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최신뉴스를 엄선하여 번역하고 원문링크와 함께 배포하는 본 서비스는 이제 관련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도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지난 1990년 「월간북방동향」으로 창간하여 1997년 「아태지역동향」으로 제호를 변경한 이래 2006년 2월호까지 발간되었다. 본지는 월간 발행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게재되는 내용은 본 아태지역연구센터에서 매월 개최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 북한, 미국, 일본 5개국의 정치/경제/사회 동향 및 초점분석에 대한 월례보고회의 결과물들이다.

『JAPA(Journal of Asia-Pacific Affairs』는 본 연구센터의 확대개편에 따라 연구영역의 확장을 꾀하고자 발간된 영문 학술잡지로서 지난 1999년 8월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본 학술잡지는 연 2회 발행되어 아시아-태평양지역 주요 국가들에 대한 연구성과를 게재하였는데, 2006년 7월호(v.7, n.7) 이후 발간이 중단되었다.

「亞太쟁점과 연구」 (Contemporary Asia-Pacific Studies)는 월간 「아태지역동향」을 확대, 발전시켜 2006년 4월에 그 창간호가 나온 계간지이다. 본 연구지는 아태지역연구센터의 내 · 외부 연구진들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현안 쟁점들을 논의하는 워크숍에서 발표된 연구논문 working paper를 묶어 계간으로 발간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2007년 겨울 (제 2권, 4호, 통권 8호)를 마지막으로 발간이 중단되었다.

제목

현대 중국정치론

작성일
2008.12.09
저자
유세희 편 저
출판사
도서출판 박영사
쪽수
358
발행일
2005-09-30
목차
1. 중국식 사회주의의 형성배경
Ⅰ. 들어가는 말
Ⅱ. 맑스주의의 수용과정과 중국화
Ⅲ. 정치체제의 상대적 개방성과 문화대혁명의 실패
Ⅳ. 결 론

2. 毛澤東 시기의 사회주의와 그 유산
Ⅰ. 서론: 사회주의체제의 본질과 유산
Ⅱ. 국가질서의 건설과 확립: 1949-1955년 26
Ⅲ. 발전방식에 관한 모색과 갈등: 1956-1965년
Ⅳ. 문화대혁명과 그 여파: 1966-1976년
Ⅴ. 결론: 중국사회주의의 유산

3. 중국의 이데올로기: 이념과 현실
Ⅰ. 머리글: 중국에서의 이데올로기 역할
Ⅱ. 중국 이데올로기와 전통요소
Ⅲ. 毛澤東 시기의 이데올로기
Ⅳ. 개혁개방의 이데올로기
Ⅴ. 개혁개방 이데올로기의 내용과 특징
Ⅵ. 21세기형 이데올로기의 발전

4. 중국의 정치제도와 권력구조
Ⅰ. 서 론
Ⅱ. 중국공산당
Ⅲ. 국가기구
Ⅳ. 당과 국가기구 간의 관계
Ⅴ. 제도의 비중 변화와 제도화의 전망

5. 중국의 정치참여: 선거를 통한 고찰
Ⅰ. 서 론
Ⅱ. 선거법의 탄생과 제도화과정
Ⅲ. 선거의 실시와 최근 현황
Ⅳ. 선거관련 논쟁과 선거의 쟁점
Ⅴ. 결 론

6. 개혁기 중국의 중앙과 지방관계
Ⅰ. 서 론
Ⅱ. 초기개혁의 논리와 내용
Ⅲ. 지방정부의 전략과 행태
Ⅳ. 중앙통제의 수단과 효과
Ⅴ. 분세제와 그 이후
Ⅵ. 결 론

7. 중국의 당-군관계와 군의 역할 변화
Ⅰ. 서 언
Ⅱ. 중국의 ‘당-군’/‘민-군’관계에 대한 기본전제 및 주요 시각
Ⅲ.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의 군 내/정치적 위상과 대군(對軍)관계
Ⅳ. 1990년대 후혁명지도부의 등장과 당-군관계의 변화
Ⅴ. 제16차 당대회 이후 신군지도부 인사내용 분석
Ⅵ. 신군지도부의 등장과 군현대화
Ⅶ. 결 어

8. 중국의 대외관계와 한반도
Ⅰ. 서 론
Ⅱ. 중국의 외교정책 기조와 강대국관계
Ⅲ. 중국의 대만정책과 양안관계
Ⅳ. 중국의 한반도전략과 한?중, 북?중관계
Ⅴ. 결 론

9. 중국의 경제개혁: 내용과 성과, 문제점 및 전망
Ⅰ. 머 리 말
Ⅱ. 우리는 왜 중국경제에 주목하는가
Ⅲ. 개혁개방정책의 내용과 특징
Ⅳ. 개혁개방정책의 성과
Ⅴ. 경제개혁의 부작용과 문제점
Ⅵ. 중국경제의 장래

10. 중국식 사회주의의 미래: 문제와 전망
내용
중국을 공부해 온 지난 30여 년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우선 중국의 정치과정을 회고하면 1970년대 초 중국은 여전히 ‘文化大革命’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당시 중국의 정치현실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혼돈 그 자체였다. 물론 이러한 혼란국면에 대한 분석과 이해 역시 대부분 문화대혁명 이후에 밝혀진 것들이다. 그들이 표방하는 이념과 체제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고 혁명의 선봉인 중국공산당과 이를 지탱해준 노동자, 농민들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또한 최고 지도부의 누가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암투를 벌이고 있는지에 대한 파악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중국정치에 대한 나의 본격적인 관심은 바로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1974년부터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강의를 하면서 中蘇硏究所를 설립하고 ‘中共’과 ‘蘇聯’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여러모로 미흡한 출발이었지만 당시 우리의 정치상황과 공산권에 대한 일반적 관심의 정도를 고려하면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비록 중국의 정치현실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유신정권 역시 무절제한 권력의 집중과 자의적 행사에 몰두했고 이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지속되는 상황이었으며 더욱이 전쟁을 한지 20년이 막 지난 상황에서 적대국 중공에 대한 우리의 기본 인식은 대체로 무찔러야 할 대상이자 상종 못할 불순한 빨갱이 집단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러한 척박한 상황에서 시작했던 중국연구는 많은 사람들이 무모하고 무가치한 일이라고 할 만큼 고단한 행군의 시작이었다.

정치과정은 글자 그대로 하나의 과정이고 어떠한 권력자도 철옹성 같은 권자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新中國 건설을 위해 매진했던 毛澤東은 중화민족의 대재앙인 문화대혁명으로 대변되는 말년의 과오를 만회하지 못하고 1976년 9월 결국 세상을 떴고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도 보기 드물 만큼 반국가, 반인민적으로 준동했던 四人幇 중심의 極左勢力들도 거세되었다. 문화대혁명의 말미에서 발생한 지도부의 격렬한 권력투쟁과 이합집산 과정을 거쳐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11기 3中全會가 열렸고 드디어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鄧小平의 시대가 서서히 열렸다. 모택동과 등소평 이 두 사람은 분명 20세기 중국대륙의 모습을 바꾼 주역이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물론 등소평으로 대변되는 소위 개혁개방세력의 등장과 경제발전을 지상과제로 내세운 등소평체제의 출범은 역설적으로 문화대혁명이라는 대재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즉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공산주의, 국가, 인민의 이름으로 10년간 지속되었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았던 이러한 일이 결코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새로운 출발의 에너지원으로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實踐은 眞理를 檢證하는 唯一한 標準’이라는 實事求是 정신이 기존의 이념 지향적 체제와 국가 목표를 대체했고 과오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당과 국가 영도제도의 개혁이 시작되었다. 물론 등소평체제의 개혁은 경제부문에 절대적인 비중이 두어졌으며 정치개혁은 경제개혁개방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최소한의 범위와 수준에 머물렀다는 한계를 갖는다. 그러나 등소평 시기 중국의 정치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경제발전과 사회적 변화는 각계각층의 새로운 이해관계와 인식변화를 유발했고, 이러한 변화에 따라 黨?政?軍에 대한 인민들의 요구 역시 대대적으로 변화하였다.

홍콩의 조국 회귀를 눈앞에 둔 1997년 2월 등소평이 사망했고 중국의 중앙 정치무대는 上海 토박이 江澤民의 등장으로 또 한 차례의 변화를 겪는다. 당시 강택민은 1989년 ‘6.4 天安門事件’의 수습과정에서 능력보다는 당 중앙 원로와 기술관료, 좌와 우, 개혁과 반개혁의 요구를 비교적 균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원만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당 중앙이 낙점한 인물이다. 한편 개혁개방의 양대 선봉으로 내세운 胡耀邦과 趙紫陽은 당조직과 국무원을 각각 분담하여 등소평노선의 확립과 실천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나 두 사람 모두 말년은 지극히 불운했다. 결국 6.4 천안문 사건을 전후하여 불명예 퇴진했고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당시 원로들은 호요방도 아니고 조자양도 아닌 제3의 인물을 원했던 것이다. 과도기적 인물이라는 초기의 평가와는 달리 집권 중반이후 강택민은 등소평의 지지와 특유의 처세술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확고한 권력기반을 구축했다. 결국 강택민은 ‘三個代表論’ 함께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시기 중국정치무대의 중요한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강택민 역시 정치개혁. 민주화에는 매우 인색했으며 정치적 안정 없이는 경제적 발전이 없다는 등소평의 유훈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2002년, 2003년을 거치면서 중국의 정치무대는 胡錦濤라는 새로운 주역을 맞았다. 주지하다시피 호금도(후진타오)는 등소평의 지지를 기반으로 1992년 10월 49세의 나이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되면서 중국은 물론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대부분의 중국연구자들은 호금도가 강택민의 뒤를 이을 후계자라는 데 의견을 모았고 결국 호금도는 당?정?군 삼권을 승계했다. 중국의 정치무대에서 지목된 후계자가 실제로 권력을 승계한 것은 더욱이 10년간 당 중앙에서 제2, 제3인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부동의 후계자 지위를 유지해온 것은 중국 정치과정의 획기적인 변화다. 이는 중국의 최고 권력변동 과정이 과거와 달리 법규와 원칙에 의거하고 따라서 상당부분 예측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4세대 지도자의 선봉으로서 최고 권력을 승계한 호금도는 ‘以人爲本’, ‘執政爲民’의 親民政策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또한 국가정책의 전반에서 ‘科學的 發展觀’과 ‘社會主義和諧論’을 강조하고 있다. 어느 지도자, 정권을 불문하고 국민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적이 없지만 이는 정치적 고려 이외에 실제로 중국이 당면한 과제에 대한 실천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인민을 위해 혁명하여 인민을 국가의 주인으로 명시했고, 인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개혁?개방했지만 여전히 인민이 국가의 주인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인민의 이익을 위해 당과 국가가 존재한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하지 못한 정권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고, 정당성 없는 정권이 영원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한 결과가 아닐까? 결국 호금도의 친민정책은 인민을 위한 정치?경제?사회적 정비라는 절박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화해론 역시 기존의 성장위주 개혁개방정책이 초래한 각종 부작용과 심각한 문제점을 시정함으로써 자연·인간·사회간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인간과 자연의 형평성,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을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 연장선에서 경제성장의 질적 제고, 인본주의에 입각한 기본적 생존 욕구 충족, 인구증가 억제 및 소양 제고, 자연자원 보호, 과학기술 진보, 환경과 발전의 균형 등을 통한 소위 지속 가능한 발전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결국 호금도는 대내적 성과와 대외적 영향력 확대에 따른 중국의 위상이 한층 제고된 상태에서 최고 권력을 승계함으로써 기존 지도자들에 비해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이 사실이나 다른 한편으로 소위 ‘綜合國力’을 지속적으로 증대시켜 전면적 ‘小康社會’를 앞당겨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인민들은 새 지도자 호금도가 대내적 도약과 대외적 팽창의 원동력을 얼마나 확대 재생산할 것인가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 최적의 정책 추진은 곧 호금도체제의 최대 과제이며 그 결과는 중국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중국의 정치과정은 세계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극적인 국면전환과 정치변동, 경제적으로 절망적 후퇴와 급속한 성장을 모두 경험했다. 이 모든 것들을 중국의 정치과정, 정치현실이라고 한다면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전망은 중국 연구자들에게는 필수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중국 정치과정의 무엇이 그러한 변화를 유발했으며 현재의 정치과정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향후 어떠한 변화를 또 다시 잉태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과 전망은 중국 연구자들의 불가피한 연구 대상이다. 이는 또한 학문적 대상으로서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로서만이 아니라 점점 중국의 무게를 절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부담해야 할 과제다.

사실 과거 중국의 정치과정에 대한 우리의 연구수준은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이념의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우리의 인식이 객관적이기 어려웠고 객관적이지 못한 인식의 틀 속에서 연구수준의 제고는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중국과 수교를 한 것도 불과 1992년의 일이다. 이 모든 주관적, 객관적 환경이 중국정치연구에 대한 장애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중국정치연구 수준은 한?중관계의 급속한 발전만큼이나 일취월장하고 있다. 나와 같은 중국연구 1세대와 2세대를 지나 현재 40대 중반을 전후한 3세대 연구자들의 중국연구 수준은 가히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중국에 대한 관심과 수요의 폭발적 증가라는 국내적 요인과 중국 현지의 접근성 증대 및 대외적 학문교류 증대라는 대외적 요인이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연구자 개개인의 부단한 노력이다.

이번에 출간하게 된 ‘현대중국정치론’은 바로 우리가 그 동안 이룩한 중국정치연구의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물론 부족한 점이 없을 수 없으나 내가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느 개인의 연구 결과물이 아니라 중국정치과정의 각 분야별 영역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중견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분야를 각각 저술했다는 점 때문이다. 즉 초기 중국공산주의 운동과정의 이념 논쟁과 중국공산당의 창당으로부터 중국식 사회주의의 향후 전망에 이르기까지 각 연구자의 전문 영역을 구분하여 주제별로 저술을 분담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의 정치과정이 너무도 광범위하고 복잡다단하여 어느 개인이 중국정치의 전 분야를 연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따라서 영역별 연구의 세분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모범적 사례라고 자평하고 싶다.

한편 각 장으로 구분된 영역별 저자들은 길게는 이십여 년 짧게는 십여 년간 중국정치연구를 매개로 나와 고락을 함께 해온 동지들이다. 따라서 나는 누구보다도 그들이 어떠한 분야에 얼마만큼의 연구성과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연구를 추진하고자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사실 내가 국내 중국정치 연구수준의 획기적인 진전을 확인한 것도 이들을 통해서고 향후 연구수준의 눈부신 비약을 확신하는 것도 바로 이들 때문이다. 비록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 때문에 오히려 각자의 농익은 연구결과를 집약할 수 있었다는 점에 위안하면서 공동 집필자들의 연구 성과와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또한 중국정치연구에 대한 우리의 애정과 사명감을 이해하시고 연구결과의 출간을 흔쾌히 허락해 주신 博英社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2005년 8월 15일
편저자 柳 世 熙
저자약력
김도희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 베이징대학교 정치학박사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원 포닥,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전임연구원
현 한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중국지역학과 교수

김 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문학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박사
한양대학교 중소연구소 연구원
현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조교수

김재철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미국 워싱턴대학교 정치학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현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김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정치학박사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중국 담당)
현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문흥호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정치학박사
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 서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현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서석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경제학박사
한양대학교 중소연구소 연구원(중국경제 담당)
현 부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유세희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정치학박사
한양대학교 중소연구소 소장, 한양대학교 부총장
현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희옥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박사
길림사회과학원 특별초청교수, 북경대학교 교환연구원
현 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 교수

장윤미
연세대학교 중어중문과 졸업, 베이징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박사
현 한신대학교 학술원

전성흥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서강대학교 정치학박사
한양대학교 중소연구소 연구원, 동덕여자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형혁규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중국연구실 연구교수
현 국회도서관 입법정보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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